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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값 상한에…러, 100척 '그림자선단' 맞불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을 배럴당 60달러(약 8만원)로 정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러시아는 강력 반발했다. 원유 감산이나 공급 중단 등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 제재의 빈틈을 이용해 자국산 원유를 계속 수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시행

이르면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가 시행된다. 서방 국가들은 상한액인 배럴당 60달러를 초과하는 가격으로 수출되는 러시아 원유에 대해선 보험, 운송 등의 서비스를 금지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일 러시아가 전쟁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러시아 우랄산 원유 시장 가격인 배럴당 70달러보다 10달러가량 낮은 수준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과 호주 한국 등도 EU가 결정한 러시아산 가격 상한제에 동참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을 30달러 정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반발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자국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상황 평가를 마치는 대로 어떻게 할지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하일 울리야노프 오스트리아 주재 러시아대사는 트위터에 “올해부터 유럽은 러시아 석유 없이 살게 될 것”이라며 상한제 도입 국가에 석유 공급을 중단할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이런 조치는 원자재 가격 상승만 유발할 것”이라며 “러시아산 원유 수요는 계속 존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그림자선단 꾸린 러시아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림자선단’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가 계속 거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림자선단은 글로벌 정유사·보험업계와 전혀 거래하지 않는 유조선이다. 이들은 국제 제재 대상국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거래한다.

그림자선단은 일반 해상 보험을 이용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 낮은 중고 유조선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위험 부담을 줄인다. 선박명을 페인트로 지우고 지분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선박 실소유주를 감추기도 한다.

러시아는 그림자선단의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유조선 100척 규모의 그림자선단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그림자선단 규모가 증가해 국제 해운업계가 주류와 그림자선단으로 양분됐을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 중고 유조선 거래 가격이 급등한 것이 그림자선단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 조선업계 한 브로커는 WSJ에 “원래는 고철 처리장으로 갔어야 할 15년 된 중고 선박 가격이 최근 6개월 만에 36%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한 해운회사는 22년 된 쇄빙선을 3200만달러에 판매했다. 지난해 이 선박의 가치는 절반 수준인 1700만달러였다.

WSJ는 “그동안 러시아의 원유 수출 자금이 우크라이나전쟁 자금줄이 돼 왔다”며 “그림자선단의 활동 규모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림자선단의 수송 능력에 따라 국제 원유와 가스 가격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